[ 요약 ] ○ 행복지수가 높은 국가건설 |
신문 기사에서, 한국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4년 연속 OECD 국가 중 꼴찌라는 기사를 보게 된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505011019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05/2012050500012.html
행복지수라는 통계는 그 근거가 어느 정도 확실한 것인지는 파악하기 힘들다.
행복의 문제는 심리적으로 매우 복잡한 문제이고 객관적 지표 형태로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통계 조사과정에서 설문과 대답 내용 조사 과정이 얼마나
개인의 행복 불행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인가에 의문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여하튼 행복도 조사에서,
OECD내 순위가 연 4년째 꼴찌라는 결과가 계속 나오는 것은, 좀 심각하다.
굳이 이런 통계가 아니더라도, 다른 객관적 지표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은 최고인 한편 산업재해율이나 교통사고율 등 사고율은 또 높다.
그리고 사회 내부에 여러 갈등요소가 있어 대립적 측면이 심하다.
우리는 늘 가까이 대하고 살아가는 현실이기에 그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렇게 행복하고 평안한 상태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여러 통계나 지표 수치를
그저 아무런 일도 아니라고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지나갈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지금부터라도 그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찾아 나가야 한다고 본다.
사실 우리나라는 독립 신생국이자 기아선상에서 헤매는 과거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가 아다시피 우리는 가난을 벗어나고 좀 더 잘살기 위해,
교육에 열성을 기울이고 산업개발 경제개발에 전력을 다해 열중해 왔고,
또 노력한 가운데, 오늘날 그 성취를 어느 정도 거두었다고 자부하며 지내오고 있다.
그러나 사회전반에 상호 갈등과 불만의 정도가 과거 가난했던 시절에 비해 그리 나아진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위 기사의 행복지수가 최하위라는 내용이 그런 실정을 조금 시사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 비교는 우선 OECD 국가내 비교다.
OECD 내 국가에서는 스페인 그리스 호주 스위스 등이 비교적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세계 여러 국가를 놓고 행복도를 비슷하게 조사하는 경우에도,
네팔이나 방글라데시와 같은 나라 또는 남미 국가가 비교적 수위를 차지하고 있고,
우리나라가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경제가 발전한 국가와 비교할 때에도 행복도가 높지 않고,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국가와 비교할 때에도 또 행복도가 높지 않다는 상황은
여하튼 우리의 불행의 원인이 단순하지 않고
또한 그 해결방안도 단순하지 않은 사정을 시사한다고 본다.
OECD 국가내에서 우리의 행복순위가 낮은 것은 상대적으로 선진국보다 우리의
경제발전정도가 뒤떨어지고 또 복지 수준도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복지수준이나 경제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는
예를 들어 네팔이나 방글라데시, 등과 같은 저개발국가에 속하는 나라의 행복지수가
우리나라보다 높게 나오는 것은 또 조금 특이하다고 받아들일만 하다.
복지수준이나 경제 발전 정도가 상대적으로 다른 선진국보다 낮아서
행복순위가 낮다는 앞의 해석이 여기에서는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여하튼 또 이런 내용은
최소한 물질적 경제적 발전과 행복이
우리가 생각하듯 상관관계가 밀접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해 준다.
저개발국가가 오히려 우리보다 행복지수가 높다는 측면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그간 거둔 경제성장의 노력과 성과가
실제로 국민의 행복과는 상관성이 없는 무익하고 부질없는 노력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많은 저개발국의 국민들이 우리보다 행복도가 더 높다고 해서,
우리가 그간 기울여온 경제성장이나 개발에 대한 노력을 중단하고, 포기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이런 문제 역시 더 높은 경제성장을 통해 더 충분한 경제력을 확보하고,
그 후 복지나 환경문제에 더 신경을 쓰면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따라서 앞으로 더욱 더 경제 성장의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갖게 되는 생각이라고 본다.
우선 개인적 문제에서 이를 생각해본다면, 물질적 풍요는 빈곤보다 좋은 것이다.
비록 부유하다고 해서, 행복해지고, 또 갈등이나 문제가 전혀 없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부유함은 좋은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원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아름다움과 같은 문제도 같다.
아름다움은 좋은 것이다. 여인이 아름다워진다고 반드시 행복해지고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아름다움은 좋은 것이라 여기고, 그래서 역시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원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부유해지고 아름다워지고 인기나 명예가 높아져서 각각의 좋음이 많아지는데,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좋음보다는,
그로 인해 나쁨이나 번뇌가 많아지고
종국적으로 불행해지고 심지어 악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많게 된다.
또 다른 한 예를 들어,
운동을 하는 것은 몸이 건강해지기를 원해서 한 것인데,
운동을 안 하다가 운동을 갑자기 시작하고 격하게 하면,
이후 몸에 이상한 증세를 느끼고, 건강이 오히려 더 악화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런데 건강을 위해서는 운동을 안할 수도 없다.
그러나 건강하기 위해서 하는 운동을 잘못 해나가다 보면 오히려 운동을 하지 않은 것보다
더 못한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 가장 좋은 상태를 얻어낼 좋은 방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국가나 사회의 경우도 같다.
국가나 사회의 측면에서 경제성장이나 발전은 좋은 것이고 또 그렇기에 열심히 추구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 그것이 좋다고 보고 추구하는 것임에도
그러나 종국적으로 국가나 사회가, 정의롭거나 문화가 발전하지 못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들도 행복을 얻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만 많아진다거나 하면 역시 문제다.
결국
물질적 풍요나
경제적 성장, 발전도 좋은 것이고
행복도 좋은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가 모두 어중간한 상태에서
이 모두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에 있음을 위 지표들이 보여주는 것인데,
그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인가.
그래서 이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그 해결점은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가 깊이 고민된다.
그리고 모든 면에서 좋은 상태를 얻어낼 방안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본다.
우선 가장 좋은 방안이라면 물론,
각 개인이 각기 원하는 그 모든 것을 다 실현하고
동시에 행복도 얻을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선하게 되기까지 한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부유하고 강한 나라인 동시에
더 나아가 사회 전반이 선하고 높은 가치를 갖는 국가
예를 들어 정의롭고 평화롭고 문화가 발전되어 있고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 이념이 실현되고,
건강하고 복지가 실현된 부강 국가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개인에게서는 선, 행복, 부, 그리고 건강, 명예, 권력, 지위, 등과 같은 각종 수단
사회에서는 정의, 평화, 문화, 자유, 민주, 건강,복지, 부강함 등의 각 가치는 모두 좋은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런 여러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만 가져야 한다거나,
어느 하나만 우선해야 한다면,
그 여러 요소들 가운데 무엇을 더 우선시해야 되는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수단은
각 개인의 영역에서는 행복을 위해 이바지 할 때 가치를 갖고,
사회적으로 선한 상태에 이바지해야 가치를 갖는다.
국가나 사회의 경우에서도 문제는 같다.
결국, 선과 행복과 같은 가치를 우선시하는 가운데,
그 실현을 위해 나머지 수단들이 골고루 충족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보이고 집착하게 되는 외관이나 외형적 지표에 너무 급하게 마음을 갖고
집착하고 몰두해 추구하다보면, 앞과 같은 부작용들이 더욱 심하게 나타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또 한편으로는 물질적 풍요나 경제 성장등을 이루게 되면,
그 나머지 문제들을 모두 해결될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자세도
그런 문제를 키우는 원인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반대로 물질적 풍요의 추구나 경제 성장을 포기해야 되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것은 좋고 필요한 것이기에 사람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원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는 선과 행복,
사회적으로는 정의, 평화, 문화, 자유, 민주, 건강,복지 등과 같은 가치를 보다 중시하고 우선시하는 가운데
그런 상위 가치가 그런 내용을 이끌고 조정해나가는 가운데,
추구해 나가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개인이나 국가가 그런 물질적 발전을 통해 최종적으로 거두어야 할 목표점은
바로 그런 것들이기 때문이다.
○ 결국 개인적으로는 물질적 부나, 건강 등과 같은 여러 수단들을 추구할 때도
그것은 선과 행복의 실현을 위해 이바지해야 하고 그 목표를 위해 적절한 정도로 각기 추구되어야 한다.
국가나 사회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번영과 군사적 강대국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역시 그것은 그 국가가
정의롭고 공정하고 평화를 추구하며
문화가 발전하고 자유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고 유지하는 가운데,
건강하고 복지가 실현되는 부강한 국가와 사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추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단지 부강국가라는 목표에만 집착하고 추구하면,
국가는 외형상 부유하고 강한 모습을 갖더라도,
과거 군국주의 국가처럼,
외국과의 관계에서는 침략을 통해 세력 확장을 추구하게 되거나,
내부적으로는 전체를 위해서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하고 무시하기 쉽고
결국 사회갈등을 일으켜 내분과 대립 갈등으로 소란스런 형태가 되게 된다.
그런데 이런 목표는 어떻게 실현가능한가.
우선 사회와 국가의 지도자들이 정책 목표에서 이런 목표의식을 중시하고 우선시 하는 의식을 뚜렷히 갖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목표실현을 위해 국가적으로는 제도의 개선이나 정책 개선을 해나가는데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성취할 수 있다면 좋지만,
어느 하나가 희생되어야 하는 경우에 앞과 같이 보다 상위의 가치를 존중하는 선택을 해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간단히 예를 든다면,
어떤 사업을 하면 수익이 100억 증가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인명손상이 10명 정도 발생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이런 때 정책 결정자가 무엇에 가치우선을 두고 선택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그 선택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모든 면에서 좋은 점만 발생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무언가 희생을 해야 한다.
이 때 어떤 가치를 희생시키고 어떤 가치를 얻으려 노력하는가가 문제된다.
그래서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 보다 최종적이고 높은 가치 기준에 바탕하여
매사를 판단하고 선택해나가는 것이 요구된다.
한편 이런 사회와 국가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각 개인도 각 개인의 생활 영역에서 그 해결노력이 함께 행해져야
이런 상태는 이뤄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각 개인의 행복이나 선의 문제는
최종적으로, 각 개인의 마음 상태가 개선되고 발전적으로 변화되어야 얻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단지 외형적이고 사회적인 여건변화만으로는 자연적으로 실현된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즉 사회, 국가적인 개선노력과 각 사회구성원의 개인적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위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사회의 경제적 분배가,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제도 뉴스를 보다 보니, 재벌가의 어린이들 가운데는 이미 수백억원대의 주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기사가 나온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2050433356
그러나 또 현실을 생각해보면, 하루 끼니를 걱정하면서 생계의 위협을 느껴가며
살아가야 하는 빈곤층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이런 빈부격차가 사회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하기 쉽다.
이처럼 사회 구성원들의 경제적 격차의 심화가
각 개인들의 불만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개인의 불만과 계층간의 갈등을 극심하게 증폭시키는
사회적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모든 개인이 경제적 풍요를 원하고,
각기 다양한 방안으로 추구하는데,
그런데 몇몇인들이, 부정 비리나 범죄적 수단을 통해 큰 부를 얻는 현상이 나타나거나,
부동산 투기와 같이 불로소득으로 큰 부를 얻는 현상이 일반화된다거나,
상속이나 증여등을 통해 출발 부터 각 개인간에 너무 극심한 격차가 일어나는 한편,
또 빈곤층은 거의 생존자체 해결이 위협받거나 급급한 상태에서 출발하게 되는 현상등은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비록 빈부격차가 일어나더라도,
최하계층의 최소한의 안전과 생계유지가 확보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판이 확보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각 개인의 성실한 생산활동과 용역활동의 결과로 적절한 범위 내에서 경제적 격차가 발생할 때,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과 에너지가 건전한 생산과 용역활동으로 집결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개인의 노력은 전체 사회와 국가의 경제력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개인이 부동산 투기 등으로 아무리 불로소득을 거둔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 전체의 부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나 사회가
범죄행위를 통한 부의 증가를 금하고,
동시에 불건전한 투기활동이나 불로소득을 억제하는 수단을 마련하는 동시에,
건전한 생산과 용역 창의적 개발 행위 등에 대해서는, 그 보호 촉진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그럴 때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빈부격차의 발생문제를 대할 때도
조금 평안해지고 안정적인 상태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각 개인들이 불만을 갖는 정도는 심화되고
그 대립이나 갈등의 양상도 격화되기 쉽다.
그리고
각 개인의 취직, 지위 획득, 출세 등의 조건이 되는 교육문제도
이들 문제와 같은 문제를 갖는다.
현재처럼 교육의 목표가 단순한 취직, 지위 획득, 출세 등을 목표로 하여
사회 각 개인들간에 무한 경쟁의 형태로 펼쳐지거나,
또 질 높은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다는
사회 현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사회 구성원들간에 불만과 갈등을 잠재우기 힘들다.
그래서 교육분야에서도 같은 개선 노력이 취해져야 한다.
교육의 목표나 가치부터 선과 행복을 위한 교육으로 목표가 정해져야 하고,
그 교과 과정도 또한 이런 목표의 실현에 이바지하는 내용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바탕에서 각 개인들이 희망하면 어떤 여건에서도
균등하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비록 한정된 지위나, 직업을 차지하는 경쟁관계에서
교육이나 지식의 우열이 그 여부를 결정하게 되지만,
그 기회가 균등하게 제공되고, 그 지식의 습득과 교육과정을 통한 성취가,
곧 사회의 건전한 가치와 개인의 인격 덕성과 밀접한 관련이 되는 형태가 되어야,
비교적 그 부작용이 적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외국유학을 다녀오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높은 학력이 있지만,
그러나 그 지식의 소유자가 각종 사회적인 비리나 부정과 밀접하게 관련되 있다거나,
각종 사회적인 의무나 책임을 회피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또 하나의 사회 갈등과 대립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높은 학력이나 지식의 습득이
곧 사회적인 공정성과 높은 가치의 실현과 같은 결과가 될 수 있도록
교육내용과 과정 그리고 제도의 전반적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런 상태에서 높은 지식을 성취한 이들이
반드시 개인적으로 행복하게 되거나,
사회에서 공정하고 선하게 활동한다는 상호 관련성을 확보하기 힘들게 되고,
그 결과 그 문제는 또 장차의 사회문제로 변하여 돌아오기 때문이다.
○ 이처럼 앞에서 든 여러 요소를 포함한 사회의 구조적 제도적 환경적 다양한 문제점이
사회문제의 원인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오직 이것만이 모든 사회문제의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객관적으로 모든 개인의 생활상태나 조건을 평등하게 만든다거나,
모든 사회적 병폐가 전혀 없는 상태를 만든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이루기 곤란한 일이기도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었다고 하여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모두 만족을 얻고 행복해진다고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 국가나 사회의 차원에서 이런 정책과 제도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개인의 차원에서도 이에 대한 노력은 필요하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각 개인들이 문제삼는 경제적 여건이나 교육여건을 놓고 생각하면,
대부분이, 과거의 왕들이나 위대한 학자들 또는 인류 최고의 성인들의 상태를 놓고 비교해본다고 해도
수준이 높은 상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의 최고 과학자나 철학자 수학자들의 지식내용은,
사실은 오늘날 보통 학교에서 교육하는 내용보다 그 수준이 훨씬 못하다.
경제적 수준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대부분이 사용하는 핸드폰이나 tv의 문명이기나 교통수단을 놓고 생각해 보아도 그렇다.
또 인류최고의 성인들이라고 생각하는 누구를 생각하더라도
그들이 오늘날 현대인들의 일반적인 경우에 비해 더 풍요롭게 지낸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현대의 각 개인들이 그들보다 현명한가? 행복한가? 그리고 선하고 정의로운가?
이 문제를 생각하면 그렇지 못하다고 보게 된다.
그런데 과거의 성인들이 오늘날 현대인들의 상태에 비해 훨씬 열악한 상황이나 여건에서도,
그런 성취를 해낸 점을 생각한다면,
오늘날 현대인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어떤 사회적 여건이나 환경에서 찾기 보다는
각 개인의 차원에서 찾고 또 해결해야 할 문제가 훨씬 많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결국 국가나 사회의 분야에서 그 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분명 있지만,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각 개인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도록 노력하는 것도 또한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좋은 것을 많이 갖고 있더라도 그러나 그 좋음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살기 쉽다.
예를 들어 손과 발이 달려 있으면서도
살아가는 동안 그에 대해 감사를 느끼거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처럼 우리들은 사실은 생각해보면 이미 매우 좋은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충분한 만족과 행복을 얻지 못하고,
또 그것을 통해 선하게 살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발견할 때마다,
스스로 심한 갈증을 느끼고 고통과 괴로움을 받으며 살아가기 쉽다.
그리고 이런 면은 사회나 국가의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개인적인 원인이 더 많다.
또 이런 문제는 국가나 사회가 어떤 개선을 취해도, 근원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해주기 곤란하다.
결국, 각 개인 스스로 주어진 상황에서 행복과 선을 얻어내려고 노력해야 하고,
동시에 국가나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은 또
이런 각 개인의 노력이 보다 쉽게 성취될 수 있도록
사회의 제도나 환경 정책내용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방향의 노력이 함께 잘 이뤄질 때
개인은 선한 가운데 행복을 얻고,
국가나 사회는 전체적으로 정의롭고 공정하고 평화를 추구하며,
문화는 높이 발전하고
자유 민주주의 질서가 유지 발전되는 가운데,
각 구성원들의 건강과 복지가 실현 보장되는
부강국가의 실현이 가능하게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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