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100 ● 최상의 구성 요소 간 우열문제 선한 뜻 > 선한 뜻의 실현 > 선한 뜻의 실현을 위한 지혜 > 행복 > 각종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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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내용]///
● 최상을 구성하는 요소 간에서 좀더 우선해야 할 내용들의 순서가 있다면 무엇인가. <최상의 구성 요소 간 우열문제>
우리가 원하는 좋은 것으로는 선, 그 선한 뜻의 실현결과, 지혜, 행복, 그리고 삶에서 추구하는 각종 수단(건강, 부, 명예,,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들 간에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우선해야 할 내용인가가 문제된다.
그런 판단 문제에서는, 이 각각을 서로 뽑아 대조하고 비교하는 가운데, 그 둘 가운데 어느 하나만 있는 상태를 가정해서 이 가운데 어느 것이 나은가를 판단하여 이들간의 우열을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한 뜻만 있고 그 선한 뜻이 이루어진 결과는 없는 경우와, 선한 뜻은 없었지만 선한 결과는 발생하고 얻는 경우 가운데 어떤 경우를 더 낫다고 할 것인가?
또 수단(건강, 부, 명예, 등)은 얻지만 그러나 행복하지 않은 경우와, 수단은 얻지 못하지만 행복한 경우 가운데에서는 어떤 경우를 더 낫다고 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계속 비교판단을 해보아야 한다. 이론상 위의 요소가 5개이므로 10 가지 유형의 조합형태를 놓고 하나하나 판단해 보아야 한다.
그 결론만 제시한다면, 다음과 같다.
본서에서는 선한 뜻 > 선한 뜻의 실현 > 선한 뜻의 실현을 위한 지혜 > 행복 > 각종 수단 의 순서로 더 중요하고 우선해야 한다고 본다.
----------- 다른 최고 목표의 검토 [2 /83] ht110 ● 최상의 요소의 다른 기준들 - 자아 완성 - 영원 - 전지 - 전능 - 편재 - 완전 - 절대자 - 덕, ○ 구판 fr new \350 |
///[간단한 내용]///
● 삶에서 추구할 최상의 상태를 구성하는 요소로 다른 기준들은 생각할 수 없는가? < 최상의 요소의 다른 기준들 >
삶에서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앞에서 일정한 내용을 제시했지만, 이와는 다른 내용을 각기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자신의 구체적 희망과 관련하여 그 희망이 극한적으로 이루어진 상태를 최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그 외에 종교적으로 완전한 상태를 이념적으로 그리는 경우에 신의 특성으로 보이는 내용들도 그런 내용에 넣을 수 있다.
그래서 그런 의미에서 최상의 상태로 보통 일컬어지는 내용들로, 자아 완성, 영원성의 획득, 전지, 전능, 편재(두루두루 어느 곳에나 존재함), 완전성, 절대자, 절대자에 의해 선택받음, 덕 등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내용과 앞에서 제시한 선, 지혜, 행복, 등의 요소와 우열을 비교할 때도 앞에서 행한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즉 선하지만 자아가 완성되지 못한 상태와 자아는 완성되었지만 선하지 못한 경우와 무엇이 더 나은가를 비교하는 것이다.
또는 '영원하지만 선하지 못한 경우'와 '영원하지는 못하지만 선한 경우'를 비교해본다거나,
'영원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경우'와 '영원하지는 못하지만 행복한 경우'를 서로 비교해본다거나 하는 방식이다.
결국 이런 판단을 해보면, 우리가 좋음을 의미하는 요소로 선과 행복 등의 개념을 구성해 갖기 때문에 결국 이들 비교에서 선과 선을 실현하는데 도움되는 지혜 그리고 행복 등이 더 나은 좋음을 의미한다고 이해하게 된다.
ht120 ● 현실적 다른 목표의 검토 ● 종교적 다른 목표의 검토 |
///[간단한 내용]///
●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여러 가지 목표들은 행복론에서 제시하는 목표들과 어떤 관계인가. <현실적 다른 목표의 검토>
사람들이 현실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매우 구체적이고 다양하다.
어떤 이는 당장 직장에서 승진을 원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어떤 특정인을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을 당장 가장 중요시할 수도 있다.
일일이 예를 들 수는 없지만, 이처럼 각 사람은 매순간 자신이 제일 중요시하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 내용에 마음을 기울이며 살아간다.
이는 그 각 사람이 그 순간 그러한 내용을 그 개인의 행복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보면서 살아감을 의미한다.
하지만, 본서에서는 그런 구체적인 목표들은 모두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본다. 그들 각 목표는 현실의 삶의 모습이 다양하듯 구체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그것은 모두 그 자신이 좋음을 얻기 위해 추구하는 무엇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들은 모두 결국 그의 행복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 수단은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인 문제지만, 이들 문제를 하나하나 살펴볼 도리는 없다. 다만, 행복론 각론에서는 이들 개별적 목표들을 건강, 시간, 쾌, 지혜, 지식, 미, 인격, 직업, 물질적부, 명예, 인간관계, 결혼, 가정, 자손, 권력, 자유, 타인에 대한 희망, 사회에 대한 희망, 자연에 대한 희망, 이런 식으로 크게 범주를 나누어, 대략적으로만 살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 내용은 각론에서의 논의대상이지만, 중요한 점은 그 각 수단 자체에 너무 집착하면, 수단을 통해 이루고자 한 행복보다 그 수단자체를 더 절대시되고 중요시하는 가운데 정작 그 수단을 통해 이루고자 한 행복이나 선은 성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총론에서는 이런 점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 경우의 문제점을 살피려면, '수단은 성취하지만 행복하지도 선하지도 않는 경우'와, '수단은 성취하지 못하지만 행복하고 선한 경우'의 비교가 필요하다.
이런 비교를 통해 선과 행복이 늘 수단자체의 성취보다는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구체적인 수단은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방법으로 선과 행복을 실현할 방안이 있으면 그 방안을 취해야 함을 말하게 된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수단과 목적을 뒤바꿔 생각하는 현상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매우 주의해야 할 내용이 된다고 본다.
● 종교적으로 다른 목표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종교적 다른 목표의 검토>
종교는 세계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또 하나의 종교안에도 매우 다른 많은 종파가 있다. 그리고 각 개인은 이런 종교를 믿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한다.
한편 각 종교는 각기 독특한 세계관 사후세계에 대한 입장이 있다. 이들 내용은 대부분 현실적으로 경험세계에서 관찰을 통해 참거짓을 판단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만일 이들 주장이 경험세계에서 참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면 이들 종교는 아주 오래전에 모두 과학 영역안에 들어오거나 아니면 적극적으로 폐기되거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은 언제나 남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영역에서 종교가 종교로 성립할 수 있는 바탕이 있게 된다.
만일 경험세계에서 이들 주장의 참을 적극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고 하여 그것이 거짓이 된다면, 그것을 쉽게 부인하거나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거짓을 적극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고 하여 참이 되는 것이라면, 또 반대로 이들 주장은 또 대부분 모두 곧바로 참으로 인정받고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참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곧 거짓이 되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거짓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하여 그것을 모두 곧 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런 영역에 대해 행해지는 각 종교적 주장들에 대해 각 개인이 믿고 안 믿고의 선택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또 바로 이것이 각 개인의 종교적 신앙과 선택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편 이런 종교적 주장은 단순히 참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영역에서 공허한 주장을 펼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비록 그처럼 직접 참거짓을 밝힐 수 없는 영역에서 행해지만 그 주장은 곧바로 현실 생활에 관련되고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종교적 계율이나 명령, 그리고 삶의 방향제시가 바로 이런 주장을 바탕으로 제시되게 된다.
예를 들어 사후세계에 천국 지옥이 있다는 주장은 단순히 현실에서 참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주장이기에 무용하고 공허한 주장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 그런 주장을 바탕으로 그 한 종교는 현실에서 오늘 당장 어떤 이에게 어떤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하고 어떤 행위는 해야 한다는 등으로 강하게 명령하게 되고, 또 그 명령이나 금지는 실제로 강한 영향력을 개인에게 미친다.
간단히 말해 많은 각 종교의 주장은 이처럼 현실 경험관찰 영역에서는 그 참 또는 거짓을 적극적으로 단정해 밝힐 수는 없으면서도 그 주장은 현실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특성을 갖는다.
한편 선한 행복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선과 행복은 현실에서 추구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많은 종교도 결국 현실 삶에서 각기 독특한 주장을 바탕으로 선과 행복을 말하고, 이들 내용은 각 종교를 믿는 이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 관계로 이들 내용은 때로는 서로 모순되거나 충돌할 수도 있다.
만일 이런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경우마다, 관련되는 각 종교적 주장과 관련해 옳고 그름을 확실히 판단하려면, 그 근본 바탕이 되는 주장의 참거짓을 끝까지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이미 말한 것처럼 참거짓을 현실 경험영역에서 밝힐 수 없는 한계를 갖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행복론의 입장에서도 이들 종교적 주장과 관련되는 부분들은 매우 접근하기 어렵다.
그리고 만일 이들 각 주장에 대해 참거짓을 다 정확히 판단한 다음에야 비로소 행복론을 쓸 수 있다면, 앞에서 밝힌 이유로 인해 행복론은 끝내 쓸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내용들 대부분은 끝내 현실경험 영역에서 참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내용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행복론은 이런 경우에 다음과 같은 해결 방안을 찾게 된다.
각 종교의 주장은 각기 다르다. 그러나 그 각 종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또는 반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떤 내용들만은 서로 공통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떤 특정한 종교를 믿든 아니면 다른 종교를 믿든, 또는 전혀 종교를 믿지 않든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 있을 것 아닌가.
예를 들어 현실에서 선하게, 지혜롭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어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그 각각의 종교의 교리나 주장과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만일 그렇다면, 각 종교적 주장을 믿고 안 믿고와 관계없이, 현실에서 선하고 지혜롭게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내용만은
공통적으로 채택할 수 있고 논의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런 경우에 선한 행복에 관한 내용이 각 종교적 주장과 모순되거나 충돌하지 않는 관계로 논의되고 제시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어떤 종교가 악과 어리석음과 불행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종교가 아닌 이상, 선과 지혜 행복의 문제는 그 각각의 종교적 주장들과도 잘 결합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서는 각기 서로 다른 종교적 주장의 참거짓 문제를 굳이 행복론 안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살피지 않더라도, 선과 지혜, 행복의 추구방안에 관한 일정한 논의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들 내용 외에 각 종교가 제시하는 독특한 주장에 대해서는 그 내용을 믿거나 안 믿는 문제는 각 개인의 종교적 신앙 선택문제로 본다. 따라서 이들 내용은 각 개인에게 일임하고, 앞과 같은 이유에서 선한 행복론에서 다루지 않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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