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이라 작은 절 성불사를 방문했다.
절은 작지만 성불사는 아름다운 절이다.
아름다움은 사실 마음에 약간의 들뜸을 일으키는데
이 곳 성불사가 주는 아름다움은 조용하며 평온하고 정결한 아름다움으로 생각된다.
절 곳곳을 가만히 보다보면
스님이 정성들여 꾸며 놓은 장식들 하나하나에서
세심하고 청정하며 평온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이리저리 얽힌 전선줄은 출발전 본인의 표준형 마음 상태를 상징한다고 할까.(^^)
다른 사진 페이지에 있던 글을 여기로 옮긴다.
글 내용이 사진과 잘 맞지 않거나 하나의 페이지에 너무 글이 많다는 이유로(^^)
본인이 여기저기 걸어다니면서 생각하는 숙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No님과 함께 이상사회 원론을 같이 공동 편집할 생각인데,
첫 시작 부분에 대한 생각이다.
그것은 한 개인이
자신과 사회와 세계와 다른 생명
각각과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고
또 어떤 상태를 가장 이상적인 상태라고 생각하며
이를 추구해나가고 출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걸어다니면서 생각하고자 하는 주제를 여기서부터시작하려고 한다.
부처님 오신날 꽃 장식이 너무 아름답다.
꽃 공양을 하면 후생에 아름답게 태어나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누군지 몰라도 다음 세상엔 퍽 아름답게 태어날 것 같은 예감(^^)
본인은 악마의 이상사회론 편집담당이라서, 먼저 악마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전체에서 작은 나의 부분을 어떤 식으로든 정한다.
보통은 내가 발걸음을 걸어갈 때 내 생각에 따라 움직여 오는 부분이 나다.
나무는 안 따라오지 않는가..옷과 안경 신발 가방까지는 포함해준다. (^^)
그런 나, 가족, 그리고 그런 나를 따라 다니는 인턴연구원.. 이런 식으로 조금씩 나의 범위가 넓어진다.
그래서 이 내가 극도의 최상의 상태를 향하기 위하여 필요한 물질 조건을 획득해 나가려고 한다.
little님이 다루는 분야의 항목으로 말하면,
최대의 최상의 건강, 시간, 공간, 쾌, 지혜, 지식, 미, 인격, 지위, 물질적 부, 명예, 인간관계, 사랑, 권력,
타인, 사회, 현상에 대한 욕구 각 방면에서 최상의 상태를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것이 본인의 입장에서는 좋음이고 그 좋음을 주는 것들을
극도로 추구하는 과정이 된다.
그래서 그것은 나에게 좋음을 극도로 주게 된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그러나 사실은 이런 표준적인 입장이 문제다.
바로 그런 자세로 자신의 최상을 추구하는 과정과 결과가
그 본인이 정한 나의 범위를 벗어나면 바로 악마의 모습과 완전히 동일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나의 범위에 들어 오지 않는 입장에서,
그런 입장으로 추구하는 남을 보면 쉽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그것이 네로황제일 수도 있고 731 부대에서 인체실험을 하는 일본군장교일 수도 있고,
유대인을 학살하는 나치 친위대 장교일수도 있겠지만,
기타 어떤 종교에서 제시하는 악마도 그런 모습이다.
문제는 그런 악마도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는
앞의 표준과 다른 원리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결국 자신이 추구하는 자신의 최상의 모습이 거울을 통해서 바라보거나,
반대쪽 면에서 바라본다면,
악마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게 된다는 사실은 조금 놀랄 만한 일이 아닌가.
왜 이렇게 되는가.
단지 나의 입장에서 가장 좋은 상태를 추구하는 것일 뿐인데
왜 그런 자신을 악마와 동일하게 보아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런 자신이 추구하는 최상의 상태가,
한정된 물리적 조건에서 자신의 좋아하는 상태의 극대화를
서로 다른 생명들이 좋고 싫음을 갖게 되는 이 물리적 조건들을 그대로 놓고 실현시키려 하기 때문에 그렇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공원에서 담배를 피고 싶다는 희망은 담배를 피고 싶다는 이의 희망에는 들어 맞지만,
다른 사람에게 불쾌를 주는 관계와 같다.
그래서 불교에서 욕심의 내용들을 전제로 다른 외부 환경을 자신의 뜻대로 극대로 추구해 변화시키는 타화자재천의 하늘 세계가 곧 마왕의 상태라고 제시되는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그 하늘의 뜻대로 실현되는 상태가 그 하늘의 입장에서야 좋지만, 그 하늘 이외의 입장에서 그것을 좋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 상태가 단지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주체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는 경우, 그런 입장에서는 그 하늘은 곧 악마로 보이고 또 그런 상대를 악마라고 불러야 할 유일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결국 표준적인 의미에서 표준적으로 여러 물리적 외부적 조건을 놓고 추구하는 최상의 추구의 형태는 사실 악마의 행로와 다르지 않다.
어떤 악마도 동일한 원리로 행하기 때문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래서 표준은 잠재적인 악마의 화신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그 뜻이 반드시 뜻대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기에 아직 잠재적인 상태라고 말하는 것일뿐
정말 실현된다면 쉽게 악마로 변할 수 있음도 의미한다.
그래서 자신의 최상의 상태의 추구가 곧 악마의 상태를 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최상의 의미를 수정해야 할 필요가 가장 먼저 제기된다.
그것은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판단할 수 있는 모든 생명 일체를
나누고 분리시키지 않은 가운데,
이들 모두의 좋음과 최상을 함께 추구해 실현해 나가야 함을 의미한다.
일단 그렇게 처음의 출발 문제를 생각해보게 된다.
막내 인턴연구원은 숲길을 들어가면서, 송충이를 만나고 사진을 찍으라고 하고 나서, 겁이 나서 숲길을 걷기를 싫어한다.
아마 송충이가 막내 인턴연구원의 입장에서는 마치 악마의 모습에 가깝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송충이는 나비 아니면 나방이 될 것이겠지만, 송충이 입장에서 왜 자신을 그렇게 한 아이가 보는가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 송충이 입장에서는 막내 인턴연구원이 만일 밟고 지나간다면 어떻할까 두려워하지는 않았을까.
이 퀴즈는 사실은 우리 각 개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은 문제이지만,
결국 모든 사회의 각 부분, 세계, 생명과 생명의 부분에서 생겨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소나무의 입장에서, 사람의 입장에서, 송충이의 입장에서 번갈아 생각하다보면
중심을 잡기 힘들 정도로 어지러운 문제이기도 하다. (^^)
깨진 항아리도 아름다운 시계로 변신
*** 여하튼 문제는 있지만 하나같이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다.
누군가의 극단적 최상이 모든 생명의 최상을 반드시 의미하지 않고
때로는 반대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난점을 피하고 모든 생명에게 이상적인 상태는 어떻게 실현가능한가.
최근 한분이 위생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주변에 독극물을 살포하였는지
연구실 주변에 곤충들의 시신이 자주 발견된다.
그런데 그 원인은, 그런 해충들 때문에 고통을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게 보면 별일 아니지만,
결국 이 역시 같은 문제의 차원이기도 하다.
그 출발은 한 개인의 마음에서
무엇을 최상이고 이상적인 상태로 보는가에서부터
처음 초점을 잘 맞추고 그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그것은 No님의 숙제~
얼음이 녹아 있는 식혜를 한 잔 마시고
연꽃차를 한 잔 마시고~
글을 옮기는 김에 Real Is 님이 붙인 댓글도 여기에 옮겨 붙이기로 한다.
Real Is 2012-05-27 오전 01:11
조금만 나가면, 언제나 아름다운 산을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하루에서 한 개인이 만나는 가장 최상의 상태는 무엇입니까?
만족과 즐거움을 느끼고 또 선한 희망을 그려나가고 노력하는 순간들이 아닐까요?
그러나 다수가 살아가는 공간에서는 서로의 좋음과 싫음이 달라서 서로의 다른 좋음과 싫음이 부딛혀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다른 이로 인한 싫음을 참고 견뎌야 하는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개인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에서,
1차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방안은 언제나 자신의 뜻이 실현되는 상태를 바라거나,
적어도 다른 이가 자신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상황을 바라게 되겠지만,
가장 기본적으로는 가장 최악의 상태에서도 자신이 행복을 늘 얻고 잃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방안은 심지어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고 사라지게 되는 상황에서도 그런 상태를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나서 그 상태에 머물러 모든 생명이 좀 더 나은 상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위대한 성인들이 그런 입장에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즉 티끌이나 먼지같이 작은 상태에 우주의 모든 가치를 그 안에 담고 그리고 전 우주의 생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마 이상적인 상태란, 결국 각 개개의 개인 생명들이 그렇게 마음을 가질 수 있을 때 그 범위에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no님이 언젠가 가장 고집센 악마가 있다면, 그 악마의 소원부터 실현시켜주고 나머지 희망을 점차 실현시켜줌으로써
하나의 악마도 소원이 성취되지 않는 상태가 없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사실 그런 하나의 악마의 소원이 성취되기 위해서
고통을 참고 받아들여야 할 다른 존재들이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그 나머지의 상태가 그런 것을 문제삼지 않는 상태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됩니다.
개인적 입장에서 그런 악마의 소원 성취를 위해 고통을 참고 받아들여야 하는 입장이 되면 사실 참 행하기 어려운 요구사항이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행하기 불가능한 일을 행하라는 것처럼 권유하기 힘든 일인데,
그러나 그런 자세는 사실 그로 인해 소원성취를 하는 악마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모든 것을 잃은 상태에서도 손과 발이 달려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과 즐거움을 느끼는 것부터 시작하면서 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오늘 하루 자신을 개인적인 최상으로 끌어 올리는 길이기도 하고,
나머지 모든 생명을 최상으로 끌어 올리는 출발점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고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유지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은 비록 자신의 존재를 영원히 최상으로 유지하는 노력과는 반대 방향이지만,
그렇게 해야 비로소 잃고 얻음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자신과 다른 생명을 모두 최상으로 이끌 수 있는 길이 된다고 봅니다.
아마 말씀하신 자신도 최상으로 나아가고 남도 최상으로 이끄는 길이란,
그래서, 정복자나 최고의 지위 권력자의 길이 아니라,
우리가 오래 오래 기억하는 성인들이 걸어간 길과 같은 모습으로 남게 된다고 봅니다.
지금 이순간 어떤 내용 어떤 것들을 최종적으로 자신이 얻고 있어야 최상인가 하는 문제가
모든 문제의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열쇠가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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